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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1-17 20:40
믿음의 증명,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글쓴이 : 라이트하우스
조회 : 353  

예수가 주님이십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주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증명,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지난 주일 모 교회 예배에서 설교자가 한 말은 그랬다. <한번 더 예배 드리기>, 예배를 드릴 때 마다 우리 믿음이 더 좋아지니 올 해 표어 가운데 하나로 한번 더 예배 드리기를 정했다고.

이 재미있지만 좀 유치한 가르침은 내가 아는 기독교 신앙의 진리와 달라서 웃고만 있을 수는 없다.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복음서가 기록된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고백>이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다른 방법도 있었겠지만 극심한 박해에 처한 자신들의 공동체에 복음서를 집필해야 했던 상황에 맞춰 <신앙의 고백>을 성경 기자들이 더욱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당시의 <kristos o' kurios, 예수가 주님이시다> 라는 고백은 즉각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었다.

로마황제를 신격화하는 배경에서 유일신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신앙을 거부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시라고 고백한다. 그렇게 고백한 댓가로 산 채로 사자굴에 던져져서 짐승의 먹이가 되거나, 로마의 아레나(Arena, 검투장)에서 검투사들의 창검에 잔인하게 도살당한다. 또는 펄펄 끓는 기름 가마에 산 채로 튀겨지기도 하고, 길다란 쇠꼬챙이에 꽂혀 길거리에 세워진 채로 불태워지기도 한다. 실제로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황금 동상 안에서 젓먹이 어린 아이를 안은 채로 죽은 고대의 유골이 발견되어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질문,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은 바로 이런 참혹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생명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너는 진정한 신앙인이냐?", "너의 믿음은 진짜냐?"라고 읽는 사람 각자의 폐부를 흩고, 심장을 관통하는 질문인 것이다.

신앙고백의 댓가로 이생에서 참혹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성도들을 독려하기 위한 주님의 말씀이 복음서에 같이 기록되어 있다.

"네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아버지 앞에서 너를 시인하마"

그래서 이것이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성경 말씀의 배경이 되었으며, 자신들의 생명과 맞바꾸는 <믿음의 증명>이 신약시대를 살았던 신앙의 선조들을 통해 증거되었다.

예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순교를 독려하는 성경 기자들의 비장함은 핍박에 놓인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주어 직면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가 되었음이 너무나도 분명하지만, 이것을 읽는 후대의 성도들에게는 - 지금 내가 그러하듯 -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마주하게 될 <신앙에의 도전>이기에, 지금 대다수의 목사와 교인들이 생각하듯 "믿습니다, 아멘!"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니 부디 지금 믿는다고 고백했으니 "구원받으셨습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마치 면죄부 팔 듯 가르쳐서는 안된다.

마음까지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분 조차도 우리를 향해 각자의 믿음을 증명하길 요구하신다(말1:6,눅8:25, 살전2:4 등). 그리고 나는 이것이 개인적인 것이 아닌 교회 공동체 앞에서의 증명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이것은 믿음의 문제 뿐만 아니라 회개의 문제도 같다고 생각한다.)

과거든 현재든 우리 각자는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 내 믿음은 어떻게 증명되겠는가?

"내 말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그동안 여러 차례 이야기했고, 성경이 수 천년간 이야기해 온 바로 그것, 예수님이 주신 새계명의 실천이 바로 우리가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는 아주 심플하고도 명료한 방법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나가 예배하고, 수요일, 금요일, 구역예배, 새벽예배 등 각종 예배를 빠짐없이 참석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믿음이 훌륭한 것도 아니고, 그 행위가 그를 구원할 근거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십일조와 이름도 생소한 각종 헌금들을 했다고 해서 교회 재정에는 보탬이 되었을지 모르나 그 헌금액수가 그 사람을 구원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오래 교회를 다니고 이 사람 저 사람 잘 다독여 결국에 원하던 장로되고 권사되고, 또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다고 해도 더 큰 책임을 물으실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그가 구원에 이르지는 못한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그 맡은 직임이 그 사람을 구원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최근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목사들이 모여서 통일된 협의체를 구성하고 "하나님의 뜻이니 순종하라!"고 했단다. 그 협의체가 <개독>을 대표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결코 기독교를 대변할 수 없다. 그들에게 순종한다는 것이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증명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다. 율법의 수백가지 조문이 너무 어려웠는지 다행히 예수님이 우리에 주신 것은 단 하나 뿐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결코 복잡하거나 어렵지않다.

순종이 제사보다 났다는 말,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으신다는 말,
마지막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우리는 예배의 횟수나 헌금 액수, 지위가 아니라 예수님이 마지막에 주신 단 하나의 계명, 그것을 실천하여 비로서 각자의 믿음이 진짜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수 많은 교회에서 예배와 헌금을 드리며 자신을 증명하려는 교인들이여,
열린 마음으로 다시 한번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교인에서 벗어나 성도가 되는 방법에 대해 한번만 더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권하여 드린다.

#교회개혁
#한국교회에고함
#신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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