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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교회’와 ‘목사 교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아니라 세상의 속된 복을 구하는 비루한 욕망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세인들뿐만 아니라 교인들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거센 지탄을 받고 있는 한국 교회, 그리고 한인 교회가 하나님과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건강한 교회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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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4-03 23:59
돌문이 열렸네
 글쓴이 : 라이트하우스
조회 : 31  

돌문이 열렸네
눅 24:1-8
(2021/04/04, 부활주일)



음성으로 듣기

   
 

 [이레의 첫날 이른 새벽에,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무덤에서 굴려져 나간 것을 보았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의 시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당황하고 있는데, 눈부신 옷을 입은 두 남자가 갑자기 그들 앞에 나섰다. 여자들은 두려워서 얼굴을 아래로 숙이고 있는데, 그 남자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그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아라. '인자는 반드시 죄인의 손에 넘어가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고 하셨다." 여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회상하였다.]

∙어두운 시절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의 은총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부활절 아침의 그 찬란한 빛이 우리 가운데서도 빛나기를 소망합니다.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이 시간 우리 또한 기쁨과 설렘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어둠은 스러질 줄 모르고,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쓰라림은 쉬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습니다. 죽이는 자들은 여전히 죽이고, 훔치는 자들은 여전히 훔치고, 빈정거리는 이들은 여전히 빈정거립니다.

부활절 아침, 군부 독재에 항거하는 미얀마 사람들을 지켜달라고,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주님께 청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평범한 행복을 원합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편히 쉬고, 사랑하는 이들과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놀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런 평범한 행복을 내려놓고 총구 앞에 서는 이들의 마음은 비장합니다. 모두가 함께 존중받는 세상의 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세상의 꿈을 차마 버릴 수 없어 거리에 나선 이들이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욱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 미인대회에 참가한 미스 미얀마가 전 세계인들에게 자기 조국을 위해 호소하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말을 마치며 그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 ‘세상을 치유해요’(‘Heal the World‘)라는 노래의 일부를 불렀습니다. 노래는 상처 많은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 모두가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사랑의 공간을 넓히자는 호소를 담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바람이 진실하다면 결국 거기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혐오는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를 비인간화하는 일이기에 악마적입니다. 누군가를 혐오한다는 것은 그의 삶이 위태롭다는 반증입니다. 두려움과 분노로 가득 차 마음의 여백이 없는 이들일수록,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혐오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을 능력이 없어 보이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처럼 비열한 일이 또 있을까요? 경쟁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삶을 전투로 받아들입니다. 욕망의 부추김을 받는 이들일수록 다른 이들을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적으로 여깁니다. 경제는 발전했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의 빈곤이 심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동산 문제로 들끓고 있습니다. 공적인 정보를 미리 선점하여 자기 배를 불린 이들에 대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 사회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의 삶의 방식은 정치적인 성향과 관계없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습니다. 고난 주간 제 마음에 벼락처럼 들어온 단어는 ‘기브롯 핫다아와(Kibroth-hattaavah)‘입니다. 긴 광야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과 모세에 대한 원망을 터뜨렸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꿈은 이미 빛이 바랬고, 현실적인 어려움만이 그들을 온통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필요한 것을 보내주셨지만 연이어 찾아오는 어려움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보내주셨을 때 그들은 욕심껏 그것을 거둬들여 저장하려 하였습니다. 그때 극심한 재앙이 찾아왔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그곳에서 죽었다 하여 성경은 그곳을 ‘기브롯 핫다아와’ 곧 ‘탐욕의 무덤’이라 불렀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런 탐욕의 무덤 앞에 이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낯선 체험
그러나 오늘 우리는 전혀 다른 무덤 앞에 서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주님의 주검을 안치했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은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빈 무덤 이야기‘와 ’현현 이야기’입니다. 꽤 많은 이들이 빈 무덤 이야기는 부활신앙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육체의 부활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리게 마련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접한 제자들조차 여인들의 증언을 ‘어처구니없는 말’로 들었습니다. 빈 무덤을 눈으로 확인한 후에도 이상히 여길 뿐 부활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부활이란 자기들의 경험세계에 없는 체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당혹감에 빠졌습니다. 당혹감을 느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 보려 합니다.

예수님의 처형에 관련된 사람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소문을 퍼뜨리려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부활 사건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부끄러움을 느낀 제자들이 각성해서 스승의 뜻을 이어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중동 신화에 나오는 ‘사라지는 신’의 이야기를 끌어와 부활 이야기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곡식과 다산의 신으로 여겼던 데메테르는 딸 페르세포네가 지하 세계를 다스리는 하데스에게 넘겨지자, 상심한 나머지 땅에 베풀던 모든 은혜를 거두고 노파로 변장한 채 세상을 떠돌았다고 합니다. 세상이 황폐하게 변하자 당황한 제우스는 페르세포네가 일 년에 몇 달 동안은 엄마와 재회하도록 했습니다. 마침내 데메트르의 노여움이 풀려 세상은 다시 꽃을 피우게 됐다는 것입니다. ‘사라지는 신‘ 이야기는 깊은 상실감을 거쳐야 기쁨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원형적으로 알려 줍니다. 무덤에 갇히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의 반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꽤 합리적이고 그럴 듯한 설명처럼 보이지만 그건 부활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 사건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부끄러움에 대한 자각 혹은 영적 깨달음만이 아닙니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도리는 없지만 그 사건은 제자들의 마음을 강하게 뒤흔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그리고 우리가 서 있던 삶의 토대를 사정없이 흔드는 분이십니다. 드고아의 목자였던 아모스는 예언자들과 어울린 적도 없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자가 으르렁거리는데, 누가 겁내지 않겠느냐? 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암3:8)

∙굴려진 돌
부활절 날 벌어진 사건도 이와 유사할 겁니다. 여자들과 제자들은 어떤 압도적인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새벽에 여인들은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무덤에서 굴려져 나간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하고 있을 때 눈부신 옷을 입은 두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여인들이 고개를 깊게 숙이자 그들이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그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아라. ‘인자는 반드시 죄인의 손에 넘어가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고 하셨다”(눅24:5-6)

그 말을 듣는 순간 여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회상하였습니다. 회상은 과거의 사건을 이 자리로 가져오는 행위입니다. 기억하는 순간 그 말 혹은 그 일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서서히 여인들의 눈에 드리웠던 비늘이 벗겨지고 있었습니다. 새벽이 서서히 여인들의 마음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돌문만 굴려진 게 아니라, 여인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던 슬픔과 절망의 돌문도 굴려졌습니다. 부활절 아침 여인들이 본 것은 굴려진 돌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것을 보고 있는지요? 우리들 속에서 꽃 피어나려는 것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 스스로 그 속에 갇힌 채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두려움, 슬픔, 자기 연민, 좌절감, 원망, 미움, 자학 등이 그것입니다. 거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과 기억들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그를 가두었던 돌문은 이미 굴려졌습니다. 이제는 그 무덤에서 나와야 합니다. 강원도에 있는 마음분교 6학년 배강길 어린이가 쓴 ‘옥수수 심기‘라는 동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크면 우리가 먹는 옥수수
지금 옥수수 씨앗이 새 삶을 시작한다.

땅속에 파묻혀
캄캄한 세상을 살다가
작은 씨앗으로 시작해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오늘도 한 옥수수 씨앗이 새 삶을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시이지만 이 아이의 삶을 잘 아는 선생님의 눈으로 보면 이 시가 그렇게 평범하게 보이질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권일한 선생님은 이 시를 소개하며 이런 글을 덧붙였습니다.

“땅속에 파묻혀 캄캄한 세상을 사는 아이를 여럿 만났습니다. 부모가 싸우면 지진이 나는 것 같다는 아이, 부모의 이혼 때문에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 웅크린 아이, 욕설과 학대에 주눅이 들어 불장난을 하며 희열을 느끼는 아이, 점심은 학교에서 먹는 급식, 저녁은 학교에서 가져간 급식, 아침은 학교에서 가져가 먹다 남은 급식으로 해결하는 아이,”(권일한 글, 반예림·이가진 그림, <학교에서 외계인을 만나다> 우리교육, p.92-93)

권일한 선생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씨앗이지만 아이들이 캄캄한 세상을 뚫고 나와 싹을 틔우고 밝은 세상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해달라고, 인생은 저마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그러한 삶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새로운 소명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과거에 벌어진 한 사건을 사실로 믿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활은 참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는 패배해도 하나님은 패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패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꿈꾸시는 세상을 현재화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렇기에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예언자가 꿈꾸었던 해함도 상함도 없는 세상의 꿈, 예수님이 꿈꾸셨던 하나님 나라의 꿈을 버리지 않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려 할 때 주님은 생생하게 우리 가운데 현존하십니다. 살아 있는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교리 속에 박제화 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정한 사람들의 위신과 이익을 위해 볼모로 잡혀 있어도 안 됩니다. 부활 사건은 삶이 아무리 곤고해도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내라고 말합니다.

로빈 월 키머러가 쓴 책에서 생태천이(生態遷移, ecological succession)라는 말을 만났습니다. 이 용어는 시간이 흐르면서 어떠한 장소의 식물 군락이 변화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저자는 자연재해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가 어떻게 복원되는지를 유심히 살폈습니다. 맨 먼저 황폐한 땅에 이끼가 덮이고, 그곳에 사시나무들이 자라고 그늘이 생깁니다. 그런 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나무는 새를 불렀고 새는 우리 주위에 만발한 라즈베리, 딸기, 블루베리를 불렀다. 숲 가운데는 그늘이 져 시원했고 사시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은 폐기물 위에서 얇은 부엽토 층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주변 숲에서 이주해 온 단풍나무 묘목 몇 그루가 광산의 척박한 환경으로부터 숲의 보호를 받으며 뿌리내리고 있었다.“(로빈 월 키머러, <이끼와 함께>, 하인해 옮김, 눌와, p.91)

생태천이는 숲의 기적을 보여주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생명을 풍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중단되는 법이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생명과 평화가 살아 숨 쉬는 세상, 아름다운 생태계를 열어가기 위해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절망과 체념은 불신앙입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우울에 빠지지 말고 생을 경축하며 살라고, 주변에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라고 말합니다. 따뜻함과 친절함과 명랑함으로 사람들이 마음 편히 머물 공간을 마련하십시오. 지금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의 설 땅이 되어주기 위해 애쓰고, 절망의 어둠에 갇힌 이들을 가로막고 있는 돌문을 굴려주십시오. 그 때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비애감은 기쁨과 감사로 바뀔 것입니다. 황폐한 땅이 숲으로 복원되듯이,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주변에 하나님 나라의 생태계가 형성되기를 빕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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