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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교회’와 ‘목사 교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아니라 세상의 속된 복을 구하는 비루한 욕망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세인들뿐만 아니라 교인들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거센 지탄을 받고 있는 한국 교회, 그리고 한인 교회가 하나님과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건강한 교회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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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7-11 16:16
주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룰 것이다
 글쓴이 : 라이트하우스
조회 : 75  
 > 영성 > 김기석 설교
주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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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7월 10일 (일) 14:49:00 [조회수 :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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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룰 것이다
왕하 19:29-31
(2022/07/10, 성령강림 후 제5주)

음성으로 듣기

   
 

[히스기야야, 너에게 증거를 보이겠다. 백성이 금년에 들에서 저절로 자라난 곡식을 먹고, 내년에도 들에서 저절로 자라난 곡식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내후년에는 백성이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둘 것이며, 포도밭을 가꾸어서 그 열매를 먹게 될 것이다. 유다 사람들 가운데서 환난을 피하여 살아 남은 사람들이 다시 땅 아래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살아 남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오고, 환난을 피한 사람들이 시온 산에서부터 나올 것이다. 나 주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룰 것이다.']

• 궁핍한 시대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처럼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느긋하고 한가로운 평화를 누리고 싶지만 현실은 늘 우리를 숨가쁘게 만듭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고 있어 가계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경기 후퇴 및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곡물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가난한 나라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졌습니다.

따뜻하고 공정한 세상의 꿈은 가뭇없이 시들어가고 살벌한 경쟁 논리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경쟁, 효율, 이익이라는 가치가 사회 전면에 나설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부족한 약자들입니다.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할 법이 가끔은 강자의 편익을 위해 자의적으로 집행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노동의 달콤한 열매는 상층부에 주로 배분되고 비정규직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갈등이 심각합니다. 영국 킹스칼리지와 입소스가 공동 수행한 ‘문화전쟁’ 조사 결과 대한민국은 ‘빈부, 이념, 정당, 종교, 성별, 세대, 학력’ 등 7개 분야에서 조사 대상국 28개국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갈등이 가장 심한 나라라는 말입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흔히 우리 시대를 가리켜 post-truth 시대, 즉 탈진실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전통적인 매체인 신문이나 방송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더 많이 얻습니다. 그런데 그 정보라는 것이 진실이나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정보들은 우리 속에 확증편향을 강화시키곤 합니다. 탈진실의 시대란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내기 어려운 시대라는 말일 겁니다. 오늘 우리에게 마구 밀려오는 정보를 걸러낼 수 있는 여과장치가 고장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탈진실 시대의 특색은 하나님 망각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듯 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들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우리 자신과 현실을 살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조차 하나님의 뜻은 제쳐놓고, 진영 논리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영성이 깊어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리스도의 마음과 눈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요? 강자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경외심을 품고 인정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역사는 인간의 손에 달린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역사의 전환기
히스기야는 유다의 왕들 가운데 하나님만을 신뢰한 왕으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왕입니다. 스물다섯 살에 왕이 된 그는 아버지 아하스 시대에 훼손된 야훼 신앙의 순수성 회복을 위해 많은 개혁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산당들을 제거하고, 돌기둥들을 부수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내고, 모세가 광야에서 만들었던 구리 뱀도 깨뜨렸습니다. 역사가는 그가 “주님에게만 매달려, 주님을 배반하는 일이 없이,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들을 준수”하였고, 그 때문인지 어디를 가든지 성공을 거두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통해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국가 재정도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불운한 왕이었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른 때는 고대 근동 지역이 격변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세력을 키운 앗시리아가 정복 전쟁에 나서서 형제국가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때가 히스기야 4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범퍼가 제거되자 유다도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말 그대로입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게 마련입니다. 히스기야 14년, 앗시리아의 왕인 산헤립은 대군을 이끌고 와 요새화된 모든 유다 성읍들을 공격했습니다. 예루살렘 함락은 시간문제로 보였습니다. 히스기야는 라기스에 와 있던 산헤립에게 전령을 보내 화친을 청했습니다. 산헤립은 공격을 멈추는 대가로 은 삼백 달란트, 금 삼십 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치라고 요구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것을 다 주고도 부족해서, 성전 문과 기둥에 자신이 입혔던 금까지 다 벗겨 산헤립에게 보냈습니다. 굴욕스러운 일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산헤립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국이라는 살육 기계는 상대방을 부수기 전에는 만족을 모르는 법입니다. 산헤립은 다르단, 랍사리스, 랍사게에게 많은 병력을 주어 예루살렘을 공략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다르단, 랍사리스, 랍사게는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관직 이름입니다. 총사령관, 군사령관, 야전군 사령관 정도로 보면 되겠습니다. 히스기야는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 그리고 역사기록관 요아를 보내 그들과 협상을 하도록 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경세가들이었을 것입니다.

• 선동가 랍사게
그러나 그들은 산헤립이 보낸 야전군 사령관 랍사게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랍사게는 타고난 선동가였고, 외교적 토론에 익숙한 협상가였습니다. 그는 협상 사절로 그 자리에 나온 세 사람 뿐만 아니라 성벽에 붙어서서 그 협상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까지 염두에 두고 말했습니다. 그는 유다 왕실과 백성들을 분열시켜 저항 의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말했습니다. 그의 논리는 치밀합니다. 첫째, 사람들은 전통의 우방인 애굽의 도움을 받으리라는 기대를 품겠지만 애굽은 ‘부러진 갈대 지팡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야훼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싶겠지만 히스기야가 산당과 제단을 다 허물어 버렸으니 그 또한 허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셋째, 유다의 군사력은 너무나 보잘 것 없어서 앗시리아의 가장 하찮은 병사 하나라도 물리칠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합니다.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러 오면서 유다가 섬기는 주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왔을 리가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공략은 하나님이 시키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랍사게는 시리아 말이 아니라 유다 말로 연설하듯 말했습니다. 히스기야의 사신들이 그에게 성벽 위에서 듣고 있는 백성들이 있으니 시리아 말로 말씀해달라고 부탁하지만 랍사게는 오히려 더 큰 소리로 백성들을 향해 말합니다. ‘너희는 위대한 왕이신 앗시리아의 임금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그는 마치 예언자들이 백성들을 향해 말하는 것 같은 구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아라. 그는 너희를 내 손에서 구원해 낼 수 없다. 히스기야가 너희를 속여서, 너희의 주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며, 이 도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 절대로 넘겨 주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너희로 주님을 의지하게 하려 하여도, 너희는 그 말을 믿지 말아라.”(왕하 18:29-30)

민심을 이반시키기 위한 연설이었습니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신앙조차 무용지물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랍사게는 항복하는 이들은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에서 난 열매를 따 먹게 될 것이고, 자기가 판 샘에서 물을 마시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는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뭇 민족의 신들 가운데서 어느 신이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자기 땅을 구원한 일이 있느냐?”(왕하 18:33) 백성들은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말라는 왕의 명령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 휴브리스의 최후
히스기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립무원의 처지였습니다. 그는 자기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성전에 들어가면서 궁내대신과 서기관과 원로 제사장들에게 베옷을 입혀 이사야에게 보냈습니다. 베옷은 슬픔의 상복인 셈입니다. 왕이 기도를 부탁하면서 이사야에게 전하라 한 말은 민족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이의 고독과 쓸쓸함이 그대로 배어 있습니다.

“오늘은 환난과 징계와 굴욕의 날입니다. 아이를 낳으려 하나, 낳을 힘이 없는 산모와도 같습니다.”(왕하 19:3b)

‘아이를 낳으려 하나, 낳을 힘이 없는 산모’라는 말이 그를 사로잡고 있는 무력감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이사야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왕에게 전하라면서 산헤립의 대군이 뜬소문을 듣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결국은 칼에 맞아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산헤립은 애굽이 군대를 동원했다는 풍문을 듣고 전선을 립나로 옮깁니다. 그러나 아직은 끝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산헤립은 랍사게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내용은 말로 했던 위협과 동일합니다. ‘세상의 어떤 신도 앗시리아의 힘을 당해낼 수 없다’, ‘너만은 예외라고 믿지 말라’. 권력에 도취한 이들은 스스로를 신적인 존재로 격상시키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몰락의 시작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권력에 대한 조롱과 경고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약에서 가장 노래된 전승층에 속하는 미리암의 노래가 전형적입니다.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던져 넣으셨다.”(출 15:21) 말과 기병으로 상징되는 강력한 제국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력할 뿐입니다.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인 벨사살이 귀인들을 불러 큰 잔치를 베풀면서 금과 은과 동과 철과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할 때, 갑자기 사람의 손이 나타나 촛대 앞에 있는 왕궁 석고 벽 위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 내용은 ‘메네 메네 데겔’과 ‘바르신’이었습니다(단 5:25). 왕의 나라가 끝날 때가 되었고, 왕은 저울에 달려 무게가 부족함이 드러났고, 왕의 나라가 나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성전에 들어가 산헤립의 편지를 펼쳐 놓고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하늘과 땅을 만드신 대주재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 우리의 하나님, 이제 그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셔서, 세상의 모든 나라가, 오직 주님만이 홀로 주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왕하 19:19)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이사야를 통해 응답하셨습니다. 앗시리아 왕은 유다를 조롱함으로 하나님까지 조롱했습니다. 하나님은 조롱당하실 분이 아닙니다. 산헤립은 자기 힘을 과신하고 있지만, 각 민족들이 자라기도 전에 말라 버리는 풀포기나 지붕 위의 잡초와 같았던 것은 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앗시리아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한계를 모르는 그의 분노와 오만을 하나님은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었습니다. 산헤립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산헤립의 군대를 치시자 그들은 궤멸되었고, 니느웨로 도피하여 훗날을 도모하려던 산헤립은 자기가 믿던 신인 니스록의 신전에서 예배드리던 중 살해 당하고 맙니다. 하늘에 오르려던 자의 비참한 추락입니다.

자기 힘에 도취된 이들은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삽니다. 그러나 노자가 말한 것처럼 ‘발꿈치를 올리고 서있는 자는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가랭이를 벌리고 걷는 자는 오래 걸을 수 없는 법’(企者不立, 跨者不行/도덕경 24장)입니다. ‘모든 사물은 강장하면 할수록 일찍 늙는 것이니, 이것을 일컬어 길답지 아니하다고 한다. 길답지 아니하면 일찍 끝나버릴 뿐’(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도덕경 30장)입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산헤립에 대한 징계와 아울러 당신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전쟁의 참화가 당장 그치지는 않겠지만, 결국은 그 땅에 평화가 정착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금년과 내년에는 들에서 저절로 난 것을 먹어야 할 터이지만, 내후년에는 백성이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고, 포도밭을 가꾸어 그 열매를 먹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연 환경이 회복되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릴 테지만, 결국 살아 남은 이들은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나 주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룰 것이다”(왕하 19:31c).

숲에 들어가면 산의 전모를 알기 어렵습니다. 멀리서 바라보아야 산의 모습이 잘 보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눈으로 이웃과 세상을 볼 때 우리는 근원적인 희망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어지러운 세태 속에서도 지향을 분명히 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샬롬의 세상을 바라보고 삽니다. 주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이미 시작하신 일에 동참하도록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생명의 씨, 평화의 씨를 뿌리고, 움튼 싹을 소중하게 가꾸는 이들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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