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

공지사항

알립니다

등급업 게시판

정화운동

자유게시판

교회 정화 칼럼

교계 뉴스

말씀 및 기도

한 줄로 나누기

아르케처치

아르케처치란?

아르케처치 뉴스

 



 

광대로 살 것인가?

자유인으로 살 것인가?

목사에 의한, 목사를 위한,

목사의 교회에 맞선

한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

‘목사 교회’와 ‘목사 교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아니라 세상의 속된 복을 구하는 비루한 욕망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세인들뿐만 아니라 교인들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거센 지탄을 받고 있는 한국 교회, 그리고 한인 교회가 하나님과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건강한 교회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현재접속자 : 46 (회원 0)

 

 

 

 

 

 

 



 
작성일 : 14-02-27 18:06
종교적 여흫에 불과한 설교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글쓴이 : 라이트하우스
조회 : 4,260  
설교(說敎)란 무엇인가? 말씀을 가르치는(선포하는) 것이다.
어떤 말씀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설교자의 말만을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하여 선포하며 아멘?을 강요하는 사례가 유행하는 현 시대이기에 “들려지는” 설교가 진정 아쉽다.

왜 “들려지는” 설교가 아쉬워졌는가 ?
첫째,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기에 설교가 들리지 않는다.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는 교인에게는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신앙적으로 합리화해 주는 설교만 들릴 것이다. 그들에게 설교는 종교적 정당화의 수단에 불과하다.

둘째, 설교가 청중의 머리와 가슴에 와 닿지 않기에 들리지 않는다. 역사라는 날줄과 사회라는 씨줄로 엮어진 인생의 구체적인 실존적 고뇌를 외면한 추상적인 교리 주입식 설교와 비논리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성서 강해식 설교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분석과 설명은 많은데 교인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해 명쾌한 답을 못주기에 들리지 않는다.

논문 표절로 인한 본인의 잘못으로 인한 자숙 기간을 고난으로 표현하는 설교, 아들위해서 교회에 131억원의 손해를 끼치고도 진주를 탄생시키려는 고난 탓으로 돌리는 설교, 아들에게 자신(?)의 교회를 세습시키려고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설교, 정권에 아부하는 모습을 감추려고 애국심을 앞장세우는 설교,

무한 경쟁의 논리와 성공 지향적 가치관을 신앙적·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개인적인 성공을 하나님의 영광과 동일시하는 설교, 인과응보의 세계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당사자 개인의 탓으로 돌릴 뿐 이웃의 고통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정죄하는 설교, 비논리적인 독선과 무개념에 기초한 공격성이 가득한 아전인수적인 무리한 주장의 설교, 종교적 여흥에 불과한 설교가 여전히 횡행하는 한국교회에서 청중들은 설교가 들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열변의 설교의 끝나자마자 설교의 내용을 바로 잊어버리는 교인들에게 어떤 설교가 과연 “들려지는” 설교가 될 것인가 ?

“오늘 설교가 나의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라며 답답해하는 교인들에게 “현실의 문제에서 출발해 그것을 성서에 조명해 보고 오늘의 상황에 생명의 힘을 주는 성서의 의미를 찾아내는 형태” 가 바람직하며 이는 “성서는 오늘 우리의 삶에 생명을 줄 때 의미 있으며 경전이 된다”는 전제가 반드시 이어져야하지 않을까?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게 되는 것일까?
첫째, “들어줘야하는 설교”가 아니라 “ 변화받는 설교, 들려지는 설교”가 되려면 누가 설교하는 가가 중요하다. 설교에 합당한 설교자라는 것이고 이는 인격적,도덕적으로 자격이 있는가이다. 더러운 손으로 주는 떡은 아무도 먹으려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설교자가 과연 나를 주안에서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가”이다. 성도들은 설교자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인지 관심이 있는 척하는지를 직감으로 안다. 내가 재력이 있고 사회적 지위가 있기에 아는 척하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셋째, 설교가 과연 설교다운가 아닌 가이다. 이는 설교 자체에 논리성이 있는가이다. 신학의 부재와 체험의 부재와 열정의 부재와 지성의 부재인 설교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설교”이며 그래서 예배의 일부이기에 할 수없이 “들어줘야 하는 설교”이다.

교계가 너무도 복잡다단한 이 시대에 주일 예배에는 참석하여야 하고 그래서 “들어줘야 하는 설교”인지 아니면 성령의 거부할 수 없는 능력으로 “들려지는 설교”이기에 관절과 골수가 쪼개져 나의 삶이 변화되는 설교인지 그것이 문제이다.         아멘넷


 
 

Total 2,492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77 한국교회 목회자, "너 어디에 있느냐?" 라이트하우스 03-11 5439
76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장악력 키우려 정관 고치나 라이트하우스 03-11 4059
75 교회의 본질은 외형적인 것에 있지 않다 라이트하우스 03-11 4320
74 몰지각한 직분자들에게 따끔한 교훈을 보여 주어야한다. 라이트하우스 03-08 4031
73 교회의 신뢰회복을 위한 재정 건강성 운동 라이트하우스 03-07 4350
72 존 파이퍼, "조용기 목사 범죄는 그리스도 욕보인것" 라이트하우스 03-07 4683
71 돈과 권력의 유혹을 받는 그리스도교 라이트하우스 03-06 4318
70 '미국의 대표적 강해 설교가' 존 매아더목사 '한국교회'를 말하… 라이트하우스 03-05 4785
69 정죄와 분별의 차이 라이트하우스 03-04 4775
68 상식과 양심이 파선된 교회는 사교집단 정화수 03-03 4302
67 "밥벌이 목회" "돈벌이 목회"의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라이트하우스 03-02 4608
66 신성남 집사의책, " 어쩔까나 한국교회 ' 라이트하우스 03-02 5300
65 종교적 여흫에 불과한 설교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라이트하우스 02-27 4261
64 신앙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 나" 일뿐 정말 그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라이트하우스 02-26 4436
63 개혁연대, "조용기목사, 변명말고 참회하라" 라이트하우스 02-26 4332
   161  162  163  164  165  166  167  

Copyright © 2018 ChurchPurificationMovement. All rights reserved.

대표: 김 영철, 대표전화 330-703-8873, 330-304-3795, email: yckim116@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