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한번 따라 해 보실까요. 관성은 천천이요, 성균은 만만이로다."

[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이 말은 2018년 한 교회 담임목사가 외부 사역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그 교회 전도사가 교인들에게 전한 설교에서 나온 말이다. 놀랍게도 여기서 '관성'은 담임목사 이름이고, '성균'은 전도사 자신의 이름이다. 교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관성은 천천, 성균은 만만"을 따라 외치며 큰 소리로 웃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담임목사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와나, 전도사 클라스가 다르다 정말"이라며 유쾌하게 맞받아쳤다. 교회 분위기를 대번에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이 에피소드는, 김관성 목사(51)가 2015년 개척해 올해로 7년째를 맞은 경기 고양시 행신침례교회 이야기다.

'만만 전도사' 반란 사건(?)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행신교회는 성장을 거듭하며 등록 교인 400명이 넘는 지역 내 중형 교회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만만 전도사' 우성균은 최근 교인들의 투표를 통해 행신교회 2대 담임목사로 공식 청빙됐다. 올해 1월 '천천 목사' 김관성이 돌연 사임을 선언하며 자신의 고향 울산에 또 다른 개척교회를 시작하겠다고 나선 까닭이다.

김관성 목사가 사임한 가장 큰 이유는 '교회는 교회를 낳아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있다. 행신교회가 성장하고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양심의 소리가 복음 전도자로서의 소명을 자극했다. 그렇다고 '돈 몇 푼, 교인 몇 명' 떼어 주고 후배 목회자를 사지로 내모는 '못 할 짓'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개척을 해 봤던 자신이 또다시 개척에 나서기로 한 것. 큰 교회 목사들의 교회 사유화와 불법 세습 소식이 줄을 잇는 시기에, 자신이 세운 중형 교회를 제 발로 떠나기로 한 그의 이야기는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사임 발표 후 김관성 목사가 보낸 지난 반 년은, 충격에 빠진 행신교회 교인들의 마음을 달래면서 동시에 울산 교회 개척을 준비하는 바쁜 시간의 연속이었다. 쉴 틈 없이 들어오는 외부 사역도 그의 분주함에 한몫했다. <뉴스앤조이>가 1월 중순에 요청했던 인터뷰가 7월에야 성사된 이유다. 지난 6월 26일 눈물의 파송식으로 행신교회 가족들과 이별한 뒤 울산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김관성 목사를, 7월 7일 경기 고양고속버스터미널 내 카페에서 만났다. 떠나온 교회를 향한 깊은 애정과 새로 시작할 교회에 대한 설렘·긴장이 그의 목소리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김관성 목사를 7월 7일 만나 행신침례교회 사임 이야기와 울산에 새로 개척할 교회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김관성 목사를 7월 7일 만나, 행신침례교회 사임 이야기와 울산에 새로 개척할 교회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행신교회를 떠나며
"교회는 교회를 낳아야 합니다
그 소명을 위해 나를 좀 풀어 주십시오"

- 7년간 함께했던 행신교회에서 사임하고 파송식까지 마치셨는데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일단 우리 행신교회 가족들과 헤어진 감정을 제가 아직 다 추스르지 못한 것 같아요. 얼마전 파송식에서도 정말 많이 울었고 교회 가족들도 다 눈물바다였어요. 한편으로는 이렇게 큰 사랑과 지지를 받으면서 한 목회지를 떠나는 것에 대한 감사함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게 너무 아파요. 사실 저는 담임목사직을 내려놓는 건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근데 함께해 온 가족들과 정을 끊어야 한다는 게 너무너무 힘들더라고요. 지금도 애를 쓰고 있는데 마음으로는 참 힘듭니다.

지금은 8월 초 울산에서 시작할 개척교회를 준비하고 있어요. 형식적으로는 제가 11월 첫째 주까지 행신교회 담임목사지만, 실질적인 목회 권한은 다 우성균 목사님에게 넘어갔어요. 담임 목회를 시작하신 거죠. 저는 이제 교회 안 가요. 그래서 오늘도 교회가 아니라 여기(고양고속버스터미널)서 만나자고 한 겁니다.(웃음)

- 올해 1월 9일 '안디옥교회(행 13:1~3)' 설교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죠. 한마디로 "안디옥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던 것처럼 나를 좀 풀어 줘라"였어요. 교인들에게는 그야말로 '폭탄선언'이었을 텐데, 사전에 어떤 협의도 안 돼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예, 전혀 안 됐습니다. 사전에 떠나는 걸 (교인들과) 의논하기 시작하면 못 갈 것 같더라고요. 분명히 다들 반대할 거고요. 제가 또 남들이 부탁하면 거절을 못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후임으로 생각한 우성균 목사님 부부만 따로 불러서 준비시키고 아무에게도 미리 얘기 안 했어요.

그 설교를 했던 당일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죠. 어떤 가족들은 막 놀라서 오열하고, 이제 교회 안 나온다 하고, 그런 시간이 한 달 이상 지속됐어요. 저는 그때부터 가족들을 찾아다니면서, 수습하고 달래고 설명하느라고 시간을 보냈죠. 지금은 가족들과 대화도 하고 의논도 해서 '김 목사님 가는 길을 응원해 주고, 새로 담임목사가 된 우성균 목사님을 중심으로 우리 행신교회가 더 건강하고 좋은 교회를 세워 가는 것이 맞다' 이렇게 교통정리가 잘된 것 같아요. 다들 힘드셨을 텐데 성숙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해 주시니까 감사하죠.

- 그날 본문이 개척 초창기에 이미 한 번 전하셨던 말씀이었다고요.

네, 초창기에 강해 설교를 했던 내용인데, 이번에 내용을 조금 바꿔서 제 소명과 교회를 떠나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어요. 그것이 바울과 바나바가 걸어갔던 길이고, 또 복음 전도자로서의 제 소명을 완성하는 길이니, 가족들에게 나를 좀 풀어 달라고 요청했던 거죠. 

- 그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또다시 본문으로 삼을 정도면, 이 말씀이 오랜 시간 목사님을 붙들고 놔 주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디옥교회 이야기와 개척에 대한 생각이 일종의 거룩한 부담감으로 마음 한편에 계속 작용했던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사실은 교회 가족들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못했지만, 저는 행신교회가 성장하게 되면 떠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제가 <본질이 이긴다>(더드림), <살아 보면 알게 되는 것>(넥서스CROSS) 같은 책을 내고 소셜미디어상에서 조금 이름이 알려지면서, '비주류'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지받는 목회자가 됐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 스스로 마음을 안 팔아먹으려고 애를 참 많이 썼어요.

본의 아니게 제게 주어진 영향력이라든지 목회적으로 안정된 포지션을 내 욕망과 안락한 삶을 위한 도구로 사용해 버리면, 그동안 내가 외쳐 온 메시지를 배반하는 거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지지해 주시는 분들을 배반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복음 전도자로서 그런 것은 하나님 마음에 반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고요. 그래서 교회가 성장하는 내내 '언제 행신교회를 떠나야 할까', '어떻게 아름답게 떠나면서 기회 없는 후배들에게 넘겨줄 수 있을까' 고민했죠. 교회에는 또 다른 교회를 낳아야 하는 사명이 있으니까요.

김관성 목사는 올해 1월 9일 주일예배 설교에서, 안디옥교회가 복음 전파를 위해 바울과 바나바를 보냈듯이 행신교회도 자신을 보내 달라고 말했다. 행신침례교회 유튜브 채널 갈무리
김관성 목사는 올해 1월 9일 주일예배 설교에서, 안디옥교회가 복음 전파를 위해 바울과 바나바를 보냈듯이 행신교회도 자신을 보내 달라고 말했다. 행신침례교회 유튜브 채널 갈무리

- 교인분들을 '가족'이라고 부르시니 인상적이네요. 부교역자들과도 사이가 아주 각별하시잖아요. 다들 조금만 더 계시라며 붙잡았을 것 같은데, 개척 시점이 왜 하필 지금인가요. 

제가 떠난다고 하니까 부사역자들도 되게 놀랐고, 다들 많이 말렸죠. 우성균 목사님 같은 경우도 자기는 담임목사 안 해도 된다면서 그냥 평생 같이 사역하자고 했고, 그래도 안 되니까 "지금은 때가 아니니 한 3년 정도 더 해서 10년은 채우고 제가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이냐고 묻는다면, 제가 1972년생이니까 올해 51살이거든요? 나이가 50이 넘어가니까 내 자신이 비루해지기 시작해요. 돈 들어갈 데도 많고, 연장자로서 사람 구실 해야 하는 순간도 많아지다 보니, 점점 하나님께서 처음 나를 불러 주셨을 때의 풋풋한 소명감보다는 안정감을 좇게 되더라고요. 욕망은 상향성의 삶을 추구하고, 소명은 하향성의 삶을 추구하는 법인데, 목회자로서의 정체성보다는 나도 모르게 경영하고 다스리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싶은 쪽으로 마음이 흘러가요.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망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려웠어요. 그런데 여기서 나이를 더 먹으면 교회를 개척하기는 어렵겠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개척에 나선 겁니다.

- 저서 <본질이 이긴다> 등을 보면 어려서부터 가난으로 엄청 고생하셨는데요. 특히 전 사역지에서는 사택에 화장실 하나 없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요강 비우는 생활을 하셨고요. 이제는 행신교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목사님도 "생애 처음 경험해 보는 인생의 봄날"이라고 자평했을 정도인데, 굳이 다시 어려운 길을 택해 가시는 것 같습니다. 

행신침례교회 개척은 제 인생에서 뭘 해서 잘돼 본 최초의 경험이죠.(웃음) 그런 말이 있어요. 저처럼 태어나서 공부라든지 어떤 일을 해서 의미 있는 결과를 한 번도 얻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뭔가가 잘되면 불안해한대요. 아내도 제가 울산에 가겠다니까 "당신은 뭐가 잘되면 불안하나?"라고 묻더라고요. 처음엔 그런 거 아니라고 했는데, 뒤돌아보니 그런 게 없지는 않은 것 같아요. 성장 과정과 목회 여정에서 겪었던 이런저런 아픔과 시련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결코 아니에요.

사실 지금 일이 돼 가는 형국으로만 보면, 행신교회는 제가 계속 목회한다는 걸 전제로 했을 때 조금 더 성장할 거예요. 매주 새 가족들이 오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역할을 해 보고 싶었어요. 다른 교단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침례교단은 특히 지방에서는 교세도 약하고 목회해도 자립하기가 어려워요. 제가 울산으로 가는 이유가 여럿 있지만, 지방에 자립하는 교회를 세워서 이런저런 배경 하나 없이 이 길을 시작한 후배들이 저처럼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자기 소명을 이룰 수 있는 장소를 하나라도 더 열고 싶은 마음이 커요.

우리 행신교회도 마찬가지예요. 나만 소명받은 게 아니잖아요. 우리 부사역자들도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인생인데, 이 세대는 자칫 잘못하면 한 번도 담임목사를 하기 어려운 애매한 나이대예요. 그러니까 부사역자들 인생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김 목사, 너만 부름받은 게 아니잖아. 너의 수고와 너의 눈물로만 여기까지 온 게 아니잖아. 네가 먼저 시작했다는 이유로 네 소명에만 집중하는 것은 말이 안 돼'라는 생각이 들었죠. 나만 배부르고 우리 교회만 잘되는 흐름 끊어 내야죠. 이 길을 걷는 우리 후배들이 저랑은 다르게 너무 고통스럽지는 않은 출발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울산으로 향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 교인분들뿐만 아니라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 온 목사님 가족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죠. 아내 같은 경우는 이때까지 같이 살면서 제가 내리는 결정에 한 번도 반대해 본 적이 없어요. 남편 잘못 만나서 한평생 고생만 하다가 이제야 조금 삶의 안정이 찾아왔는데, 제가 그런 아내를 또 이런 도전 앞에 세우게 된 셈인데요. 그래도 제가 가는 이 길이 가치가 있다고 지지해 주더라고요. 인간적으로 힘든 것은 있지만, 이제껏 목회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교회를 또 같이 세워 나가는 게 우리의 부름이지 않겠냐고 하면서요.

아들은 지나가는 소리로 섭섭함을 토로했어요. "아빠가 간다니까 가겠는데, 나는 아빠의 그 결정 때문에 친구들과 모든 추억이 있는 이곳이 한꺼번에 다 날아가는 거야. 솔직히 인간적으로 힘들고 마음이 아프다"라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뜨끔했습니다. '내 결정을 소명이라는 말로 치환해서 마냥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겠구나' 하는 걸 느꼈고요. 딸 같은 경우는 오히려 쿨하게 "아빠, 잘했어. 응원하고 싶어" 하면서 저를 지지해 주더라고요.

- 보통의 교회는 개척을 하더라도 부교역자를 파송하는 방식으로 '분립 개척'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담임목사가 아예 직접 개척해 나가는 방식을 선택 이유가 있나요?

사실 맨 처음에는 우리 교회 재정·성도를 절반으로 나누고 우성균 목사님을 분립 개척해 내보낼까도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 상황을 보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내보내면 좋은 결과가 안 나올 것 같은 거예요. 또 행신교회가 성장은 했지만 개척한 지 7년밖에 안 된 교회인데, 여기서 교회를 둘로 쪼개면 두 교회 다 어려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교회 개척은 제일 노련한 사람이 가서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라는 거였어요. 경험 없는 사람을 개척으로 떠미는 건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차마 우성균 목사님에게 그런 역할을 맡길 수가 없어서 아예 제가 개척해 나가기로 결정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