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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교회’와 ‘목사 교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아니라 세상의 속된 복을 구하는 비루한 욕망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세인들뿐만 아니라 교인들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거센 지탄을 받고 있는 한국 교회, 그리고 한인 교회가 하나님과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건강한 교회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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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6-20 22:23
한 줌 흙의 위로
 글쓴이 : 고마리
조회 : 181  
 > 영성 > 김기석 설교
한 줌 흙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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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6월 20일 (일) 12:56:00
최종편집 : 2021년 06월 20일 (일) 12:56:38 [조회수 :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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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 흙의 위로
왕하 5:15~19
(2021/6/20.성령강림 후 제 4주)

음성으로 듣기

 

 

   
 

[[○나아만과 그의 모든 수행원이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와, 엘리사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야 나는 온 세계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디, 예언자님의 종인 제가 드리는 이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섬기는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을 수가 없소" 하고 사양하였다. 나아만이 받아 달라고 다시 권하였지만, 엘리사는 끝내 거절하였다. 나아만이 말하였다. "정 그러시다면, 나귀 두어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예언자님의 종인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예언자님의 종인 저는, 이제부터 주님 이외에 다른 신들에게는 번제나 희생제를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예언자님의 종인 저를 주님께서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모시는 왕께서 림몬의 성전에 예배드리려고 그 곳으로 들어갈 때에, 그는 언제나 저의 부축을 받아야 하므로, 저도 허리를 굽히고 림몬의 성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림몬의 성전에서 허리를 굽힐 때에, 주님께서 이 일 때문에 예언자님의 종인 저를 벌하지 마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말하였다. "좋소,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렇게 하여 나아만은 엘리사를 떠나 얼마쯤 길을 갔다.]

∙한계상황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모처럼 예배당이 외로워 보이질 않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표정을 살피긴 어렵지만 우리는 이 시간을 간절히 기다려 왔습니다. 주님 안에서 한 가족으로 지음 받은 이들이 함께 모여 찬송과 기도를 바치는 시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시간이요, 지친 영혼에 생기를 채우는 시간입니다. 힘드셨지요? 아직은 팬데믹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마치 긴 터널 저편 출구에 어린 빛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요즘입니다.

삶을 돌아보면 예기치 않은 일의 연속입니다. 평온한 일상의 흐름을 깨뜨리고 들어와 우리 삶을 뒤흔드는 일들이 간간이 벌어집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사건과 사고는 당사자들의 삶도 어렵게 만들지만, 가족들의 삶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곤 합니다. 인간은 누구도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습니다. 조심스럽게 방어 운전을 한다 해도 부주의한 다른 운전자로 말미암아 사고가 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겪어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능력으로 잘 해결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일들도 참 많습니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어떤 일에 직면하여 우리 일상에 파탄을 일으키고 , 좌절감을 느끼게 만들고, 삶이 뭔지를 묻게 되는 극한의 상황을 일러 ‘한계상황’이라 했습니다. 투쟁, 죽음, 죄책, 질병, 우연 등이 그것입니다. 인간은 그런 한계상황과 만날 때 비로소 자기 삶을 돌아보고, 애집하고 있던 것들로부터 해방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중병에 걸렸다 회복된 이들 가운데 옛 삶의 방식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을 더러 보았을 것입니다. 출세의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발버둥치던 삶에서 벗어나 가족들과의 시간을 더 누리려 하고, 주변에 있는 이들과 더 친밀한 관계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한계상황에 직면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는 시리아의 대장군 나아만입니다. 성경은 그를 ‘왕이 아끼는 큰 인물‘, ‘존경받는 사람‘, ‘강한 용사‘로 소개합니다. 시리아 사람들에게는 영웅적 인물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결코 긍정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두 나라는 적대 관계에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영웅적 인물이 나병에 걸렸습니다. 일종의 한계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받아보았겠지요. 그러나 차도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에서 잡혀와 나아만의 아내의 시중을 들던 소녀가 말했습니다.

“주인 어른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한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어른의 나병을 고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왕하5:3)

인생의 가장 참담한 상황 속에 있었던 한 소녀가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던 남자를 측은히 여겼던 것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던 나아만은 그 가능성에 매달리고 싶었기에 왕에게 가서 허락을 구했습니다. 왕은 기꺼이 허락했고,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한 통 써주었습니다. 나아만은 은 열 달란트, 금 육천 개, 옷 열 벌 가지고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치료에 대한 보답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그는 가서 시리아 왕의 편지를 이스라엘 왕에게 전했습니다.

“내가 이 편지와 함께 나의 신하 나아만을 귀하에게 보냅니다. 부디 그의 나병을 고쳐주시기 바랍니다.“(왕하5:6)

그 편지를 받아 든 이스라엘 왕은 시리아 왕이 트집 잡아 싸울 기회를 찾기 위한 수작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표현은 정중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국력이 강했더라면 코웃음치며 편지를 찢어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왕은 당혹감 속에서 전전반측하고 있었습니다.

∙의전 문제 때문에 화를 내다
왕이 옷을 찢으며 괴로워하고 있다는 소문이 엘리사에게 들려왔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와 더불어 초창기 예언운동의 대표격인 사람입니다. 그가 행한 이적은 예수님이 베푸신 이적에 버금갈 정도였습니다. 엘리사는 왕에게 그 사람을 자기에게 보내달라 청하면서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그에게 알려 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방도가 없었던지라 왕은 나아만을 엘리사에게 보냈습니다.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엘리사의 집 문 앞에 당도했습니다. 과시적 행동입니다. 그는 한계 상황 앞에 서 있으면서도 허세를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사환을 시켜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몸이 깨끗하게 될 것이라는 전갈만 전했습니다. 나아만은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화가 난 그는 부하들에게 돌아가자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왕하5:11)

그는 엘리사가 의전(儀典)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 하여 화를 내고 있습니다. ‘도리’라는 말이 참 묘합니다. 그는 스스로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껏 사환을 보내 요단 강에서 목욕을 하라 하니 화가 단단히 났던 것입니다. ‘목욕을 해서 될 일이라면 시리아에도 좋은 강이 있지 않은가?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요단 강에 견줘 부족한 게 뭐란 말인가?‘ 그가 식식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부하들이 나아만을 설득하려고 애썼습니다. 만일 예언자가 훨씬 더 어려운 요구를 했다면 응하지 않았겠냐면서 밑져야 본전이니 목욕을 해보라고 권했던 것입니다. 나아만은 마지못해 요단 강에 들어가 일곱 번 몸을 담그며 목욕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살결이 어린 아이처럼 깨끗해졌습니다. 오만함을 내려놓자 생명의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경외심에 사로잡혀
경외심에 사로잡힌 그의 앞에 비로소 엘리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나아만은 더 이상 의전 규칙이나 도리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합니다. “이제야 나는 온 세계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왕하5:15) 나아만은 더 이상 군대와 병거를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세력을 과시하고, 특별 대우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도리’를 따지며 화를 내던 그 사람이 아닙니다. 절대의 세계를 경험했기에 그는 자기의 작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을 ‘예언자의 종’으로 지칭하며 준비해 온 선물을 받아달라고 엘리사에게 부탁하지만 선지자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뜻밖의 부탁을 합니다. 나귀 두어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가져가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흙은 하나님의 큰 사랑 안에 받아들여졌던 기억의 장소를 떠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권한 것도 아닌데 그는 주님 이외의 다른 신들에게는 번제나 희생제를 드리지 않겠다 다짐합니다. 그는 자기 삶의 자리인 시리아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의 영혼의 고향은 요단 강인 셈입니다. 흙 한 줌의 위로를 느낀 적이 있으신지요?

사회학자이고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신 한완상 선생님의 미간행 저서 교정본을 읽다가 참 감동적인 이야기와 만났습니다. 한 선생님은 1962년 가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스승 이상백 선생님이 마련해 주신 여비로 샌프란시스코까지 비행기를 타고 갔습니다. 거기서 동부인 애틀랜타까지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꼬박 사흘 걸려 에모리 대학에 도착했습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기숙사에서 짐을 푸는데 캐리어 깊숙한 곳에서 비닐봉투가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보지 못한 것이어서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뜯어보니 헝겊이 나왔고, 그곳에는 종이쪽지 한 장과 흙 한 줌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님의 메시지였습니다.

“완상아, 고향 생각나면, 이 흙냄새를 맡아보아라. 이 흙은 우리집 마당 흙이다. 조상들의 뼈와 피가 묻혀있는 조국 강산의 흙이다. 조상들의 넋이 이 속에 스며있다. 부모, 형제, 자매의 사랑이 흙속에 녹아 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이 흙 속에 담긴 사랑의 힘으로 잘 이겨내고 값진 배움의 삶을 살아라.“(한완상 시대 증언집, <예수, 숯불에 생선을 굽다>, 동연, p.7[근간])

아버지의 마음이 그의 존재 전체에 와 닿았습니다. 유교적 절제가 몸에 늘 배어있어서 평소 당신의 깊은 정을 자식들에게 잘 드러내지 않으셨던 부친이셨기에 이 쪽지는 청년 한완상의 눈물샘을 자극했습니다. 무려 60년 전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 한 줌의 흙이 그의 고단한 유학생활을 지탱해준 보이지 않는 힘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흙 한 줌은 마치 ‘성사‘의 도구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떠올려 주었을 것이고, 그를 시대의 증언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마음을 일깨우는 도구가 되었을 것입니다. 나아만도 엘리사에게 청하여 가져간 그 흙을 보며 자기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을 것입니다.

∙변화된 일상
나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를 경험했지만, 그가 살아야 했던 곳은 시리아였고, 대장군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엘리사의 제자가 되지 않았다고 하여 그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모든 것을 버려두고 소명을 따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수도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살면 됩니다. 은혜를 체험했다고 하여 모든 사람이 생업을 그만 두고 목회자가 되면 큰일입니다. 차라리 자기 삶의 자리를 소명의 자리로 알아,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 앞에서 행하듯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하면 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직업을 ‘소명‘이라 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많고 많은 직업이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밥벌이에 무능하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고,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을 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은 바깥 사람을 대하여 품위 있게 살아가야 하고, 또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살전4:11-12)라고 말했습니다. 그도 역시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며 복음 전파자의 소명 또한 감당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 하느라 안간힘을 다하기도 합니다. 일도 힘들고,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때려치우고 싶은 때는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아까운 세월만 묵새기고 있는 것 같아 조급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자기 건강을 현저히 해하는 일이라든지,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일, 생명을 파괴하는 일이라면 가급적이면 빨리 떠나는 게 좋습니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자기 자리를 소명의 자리로 여길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면 의외로 할 일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아만은 대장군으로서의 자기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지만, 이미 야훼 하나님만을 믿게 된 사람으로서 느끼는 괴로움을 엘리사에게 털어놓습니다. 시리아 왕의 신하이기에 그는 왕을 모시고 림몬 신전에 들어가 허리를 굽힐 때 주님께서 그를 벌하시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는 그런 현실을 수긍합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가라”고 말합니다. 신앙을 빌미로 사람을 벼랑으로 내모는 이들이 있습니다. 신앙은 결단임이 분명합니다. 결단의 때가 무르익으면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가 이르지 않았다면 느긋하게 그에게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나아만이 그 후에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는 절대의 세계 앞에 서 본 사람으로서 자기 한계를 명확히 자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요단 강가에서 가져간 흙을 어디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그 흙을 보며 자기가 누구인지, 누구에게 속한 존재인지를 늘 자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것이 있는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키는 것 말입니다. 교회가 바로 그런 경험의 현장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가 곧 주님의 뜻을 수행하는 현장이 되기를 빕니다. 오늘도 내일도 주님은 우리를 통해 망가진 세상을 고치려 하십니다. 그 아름다운 뜻을 기쁨으로 받들 수 있기를 빕니다. 서 있는 삶의 자리 바로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십시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의 주변을 따뜻한 사랑으로 채우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이 물결처럼 번져가기를 소망하십시오. 한 주간 동안 우리의 삶이 그런 사랑의 울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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