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지금 나의 이름을 팔아 너희에게 거짓 예언을 하고 있는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를 두고 말한다. 내가 그들을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주어, 너희가 보는 앞에서 그 왕이 그들을 죽이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바빌로니아에 사는 모든 유다의 포로 사이에서는 '너도 주님께 형벌을 받아, 시드기야와 아합처럼 바빌로니아 왕에게 화형이나 당해라' 하는 저주가 생길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망측한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이웃의 아내들과 간음하였고, 나의 이름을 팔아, 내가 시키지도 않은 거짓말을 하였다. 이것을 내가 안다. 내가 바로 그 증인이다. 나 주의 말이다." (렘 29:21~23)

[뉴스앤조이-강도현 대표] 이 무서운 경고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망하기 직전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이 참 기구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예레미야서 29장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망측한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요. 

교회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이 머리 되신 교회는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도로서의 교회가 영원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한국교회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이 반복되면 교회는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 한 대형 교회 담임목사가 여성 부교역자와 부적절한 행동을 여러 차례 저지른 사실이 발각돼 사임을 발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담임목사의 사임을 처리하지 않고 전 교인 투표로 사임 여부를 결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담임목사는 처음과 다르게 사임할 뜻이 없다고 밝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전 교인 투표에서 절반이 넘는 교인들의 지지를 받아 담임목사는 아무런 징계도 없이 목사직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물론 상대 여성 부교역자는 교회를 떠나게 됐고요.

이 사건을 보면서 몇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담임목사는 특수한 신분인가? 교회의 윤리 기준이 일반 사회의 윤리 기준보다 더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제도 교회는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분들은 이보다 더 심각한 사건도 많지 않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특별히 우려되는 점은 교회가 투표라는 민주적 제도를 통해 담임목사의 명백한 문제를 아무런 징계 없이 덮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문제입니다.

민주적 제도를 통해 사회윤리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 일은 교회의 윤리 의식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여실히 보여 줍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민주적 제도를 통해 사회윤리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 일은 교회의 윤리 의식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여실히 보여 줍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문제가 터질 수 있고, 교회라고 해서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고가 터졌을 때 교회가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교회의 본질을 보여 주는 척도입니다. 만약 교회가 담임목사의 비리를 인지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애초에 취재 대상이 되지 않거나 단신 정도로 처리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상황을 전 교인이 투표로 덮어 버리는 일련의 과정은 교회의 윤리 의식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만약 비슷한 사건이 저희와 같은 비영리단체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요? 정상적인 단체라면 적절한 절차를 거쳐 징계나 해임 절차를 밟겠지요. 이는 신앙이 없는 조직에서도 문제가 될 일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해당 교회는 현대사회의 일반적인 윤리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이런 질문도 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부교역자가 비슷한 문제를 일으켰다면 교회는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그때도 전 교인 투표를 통해 결정했을까요? 담임목사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분이 여전히 많습니다. 담임목사에 대한 징계가 교회의 안정을 해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이런 사건을 마주하며 교회가 도대체 어떤 근거 위에 세워져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윤리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도 교회가 앞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교회가 제도라는 보호막으로 담임목사의 윤리적 문제를 덮는, 그 과정에 전 교인이 동원되는 상황은 지금까지의 문제들과는 차원이 다른 심각성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는 말이 정작 교회를 무너뜨리지 않을지 우려스럽습니다. 이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교회다움을 고민하고 회복하는 일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